얼마 전 다노를 떠나기로 결정했다. 오늘은 떠나게 되는 이유부터, 그 다음 단계에 대한 내 생각 등을 아무렇게 적어서 정리해볼까 한다.
현재 나의 상태는?
- 한 마디로 조졌다. 최근 내 상태를 표현하기에 이만한 단어가 또 있을까?
- 어느 순간부터 일이 재밌지 않았다. 일이 하고 싶지 않았다. 그런데도 일감을 계속 찾아다녔다. 나에게 일이란 ‘거지같은 것’과 ‘나를 증명하고 실현할 수 있는 수단’이라는 생각이 양립했다.
- 나 스스로 성장을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, 팀원들에게는 계속 성장하라고 이야기해야 했다. 인지부조화가 왔다.
- 솔직히 이제는 번아웃 내지는 슬럼프가 왔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. 생각해보면 ‘저가요- 요즘 슬럼프인데요’라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이 없는데도, 습관적으로 괜찮다고, 일이 원래 다 그런거 아니냐고 말하고 다녔던 것 같다.
- 그런 것 때문에 더더욱 주변에서 안쓰럽게 봐주셨던 것 같다. 걱정 끼쳐드려서 미안해요.
왜 나는 다노를 떠나는가?
- 다노는 확실히 내가 성장하기에 좋은 곳이다. 도전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. 프론트엔드와 관련된 부분은 물론이고, 백엔드나 인프라같은 부분도 일정 수준 기여할 수 있었고, 조직 문화를 위해서도 해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.
- 하지만 해볼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.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프로콘을 제외하면, 대체로 몇명만 설득하면 가능한 일이었다. 일하는 방식은 이보다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고 훈련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. 거기에는 경영진도 포함이 되어야 하니까 절대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일이다.
-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명확해졌다. 내가 지금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여기까지구나. 지금 내가 경험한 것, 간접적으로 학습한 것으로 해볼 수 있는 것들은 여기까지구나.
나는 다노에서 무엇을 얻었는가?
- 위에서도 이야기 했지만, 정말 많은 것에 도전할 수 있었다. 여러가지 기술적인 도전을 해볼 수 있었고, 이슈도 경험해봤고, 사외 발표도 해봤고, 팀도 만들어봤고, 팀 활동도 해봤고, 행사도 진행해봤고 그랬다.
- 그런 모든 것이 소중한 경험들이다. 이미 만들어진 곳에서 경험 해보는 것과 없는 곳에서 직접 만들고 경험하는 것의 차이는 다음에도 내가 시도하고 해결할 수 있는가이다. 시작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점이 정말로 값지다.
-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회사에서 충분히 지지를 해줬기 때문이다. 예컨대 ‘이런게 해보고 싶고, 그래서 이런 걸 해보려고 한다’라고 하면 웬만해서 거절한 적이 없었다. 오히려 살을 덧붙여주기도 했다.
- 그리고 처음으로 ‘사람’을 얻은 것 같다. 타고난 반골이라서 회사 사람들과 이만큼 연대를 쌓아본 적이 없었는데, 이직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눈물나게 좋은 사람들을 두고 떠난다는 점이다. (불 질러놓고 떠나는 놈이 말은 제법 잘한다고 생각할 것 같다.)
다음 계획은 무엇인가?
- 정해진 것은 없다.
- 우선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. 다음 계획이 어떻게 되든, 쉬어야 거기에 쓸 에너지가 준비될 수 있을 것 같다.
- 외주를 찾아보거나 소개 받는 것도 고민중이다. 일에 대한 감각은 조금 남겨두되 에너지를 준비하는 전략을 선택한다면 말이다.
- 다 떠나서 뭔가 새로운 걸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. 요즘엔 커피가 그렇게 맛있다.